닫힌 문을 보지 말고 열린 문을 보라

반잔의 물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반잔이나 있다 하고 기뻐하는 반면에, 또 다른 사람들은 반잔 밖에 물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와 같이 어떻게 보는가가 행복과 불행을 좌우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다 시련이 닥쳐서 행복의 문이 닫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쟁 중에 한 신부가 군인인 남편을 따라 동부에서 서부의 캘리포니아 사막으로 왔다.
그런데 그녀는 사막의 황량함이 싫었다.남편은 대부분의 시간을 근무로 떠나 있었고 혼자 사막에서 보내는 시간은 매우 외롭고 지루했다.마침내 그녀는 친정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엄마 저는 남편을 떠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 어린새댁은 메마른 사막을 떠나 도시로 돌아 가고 싶다고 하였다.그녀의 현명한 어머니는 딸의 편지를 받고 시 하나를 적어 보냈다.
“두 사람이 감옥의 철장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다른 사람은 별을 보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의중을 간파하였다.그리고, 땅을 보지 않고 별을 보기로 결심하였다.그녀는 사막의 꽃과 선인장과 인디언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후에 사막의 야생생물들과 인디언 문화에 대한 책을 썼고 그 분야 전문가가 되었다.

이 사막에서 별을 보고자 한 새댁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사막을 지날 때, 무엇을 보고 어떤 태도를 취하는 가에 따라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사막의 삭막한 모습을 보지 않고 별을 찾고자 하였을 때, 그녀는 사막에서 감사하고 기쁨주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는 것이 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다.
많은 시련들도 보는 것이 달라지면, 스트레스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있어야 한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三重苦) 장애자인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행복의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보고 있느라 우리를 위해 열린 문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시련에도 우리는 양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제가 LA에서 ‘너머 보고 기뻐하라’ 프로그램을 한 후에, 여자 한의사 한분이 다음과 같이 강의 후기를 적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살면서 겪은 많은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 고난 많은 세상을 극복하도록 나를 강하게 하고 잘 살도록 해 주었다. 내가 고난 가운데 겪은 경험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면 한다. 그 쓰라리고 고통스럽고 낙담되었던 지난 날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다듬어지고 빛을 발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분은 관절염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을 바라보면서, 불만스런 감정을 버리고 감사하게 되었고,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의 문제와 씨름하고 계신가요?
“내 삶에서 이런 문제는 생겨서는 안돼” “공평치 않아” 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 받고, 우울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와 반대로, “내게도 이런 어려움이 생길 수 있지” “살다가 시련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워” 라고 생각한다면, 스트레스가 적게 생기고, 시련을 극복하기가 보다 쉽습니다.
시련을 일단 받아들이면, 그 가운데서 좋은 것을 찾고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시련 가운데에서 잃어버린 것,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고 씨름하기보다 그 가운데서 좋은 것, 성장과 전화위복의 기회를 찾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