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성공의 조건

갑작스런 역경을 만나는 사람들이 그로 인해 분노, 좌절, 우울, 부인 등 각종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왜, 나에게 (Why me)?” 하는 질문과 씨름하게 된다. 그리고 나만 겪는 고통으로 여기면서 공평치 않다고 여기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등 그러한 생각들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들로 인하여 더욱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다루어진다면 자신의 잘못을 점검해 보고 개선하고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나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와 반면에, 이런 생각들이 비건강적이고 비생산적으로 이어간다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역경을 만날 때, “왜, 나는 예외여야 하나 (Why not me)?” 하고 생각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은 고해와 같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역경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분노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그 역경을 받아들이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바드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철학 교수이었던 William James 박사가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역경의 결과이든 그것을 극복하는 첫 단계이다”고 한 것은 핵심을 짚은 말이다. 왜냐하면, 그 단계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계속하여 고통받고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역경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고통스럽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배움과 좋은 점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을 닫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三重苦)를 겪은 헬렌 켈러가 “닫힌 문을 너무 오랫 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등 뒤에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고 한 말은 의미있는 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고통을 주는 것이 곧 교훈을 주는 것이다”라고 한 말과 같이, 인생이 피하려고만 하는 고통 가운데 많은 값진 보화들이 그 가운데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라고 하며,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저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한다(예레미야애가3:33; 예레미야29:11). 

또한, 하나님께서 현재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채찍질하심이며,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히브리서 12:5-11).

그러므로, E. G. White과 같이 "시련과 장애는 주님께서 택하신 훈련의 방법이며, 또한 그분께서 택하신 성공의 조건(치료봉사462)”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시야로 역경을 바라보게 될 때, 시련은 전혀 다른 사건으로 다가 오는 것이다.

그것은 피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슬퍼해야만 하는 사건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나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할지라도 더 귀중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손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끄시는 방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보게 된다. 
동양의 고전인 맹자 고자 편에도 고난의 가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이 정히 큰 임무를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를 괴롭히고 그 근골(筋骨)을 고되게 하며 그 배를 주리게 하고 그 몸을 궁하게 하며 그 하는 일을 방해하느니라."

심리치료 방법 중에 "해결 중심의 치료 (Solution Focused Therapy)"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문제를 중심으로 치료하는 '문제 중심의 치료 (Problem Focused Therapy)'와 달리 해결 방안에 초점을 맞추어서 치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치료 방법을 계속 살피고 생각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치유를 "미래 중심의 치유 (Future Focused Healing)"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부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현재의 시련을 미래를 위하여 소망을 주려고, 더 나은 것을 주기 위해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병이나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 고치는 작업, 즉 치료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분은 완전히 고쳐지지 않는다 할지라도--마치, 야곱이 얍복강에서 위기의 때 간절히 하나님과 씨름한 후에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온 영혼이 산 것 같이-- 전인(全人)이 살게 되는 치유를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6-7은,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현 세상의 고통이 심하지만 이로 인하여 변화되고 준비되어 미래에 크나큰 축복을 받게 되면 이 땅에서의 고통은 잠간이며, 고통 중에서도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그러한 미래를 볼 수 있는 만큼 그렇게 될 것이다.